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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강릉시 "명주군왕릉"을 가다.

by 꽃피는 로박사 2021.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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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비드 19로 인해 보고 싶고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옛날처럼 선 듯 길을 나서지 못한다.

내가 사는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게 요즘을 사는 대다수 사람들의 일상이다.

2021년 3월 2일부터 7월 27일까지 컴퓨터 관련 교육을 받았다.

나름대로 공부에 몰두하느라 교육장소와 도서관, 집을 오가면 바쁜 일정을 보냈다.

교육이 끝난 후에는 시간을 내서 30분 정도가 소요되는 텃밭에 가을배추와 무를 심었다. 춘천지역에서 배추와 무를 심는 시기는 매년 8월 15일 광복절을 전. 후해서 심으면 매우 적절한 시기에 심었다고 할 수 있다. 매년 텃밭을 가꾼 경험에서 얻은 가을배추와 무를 심는 시기다.

너무 늦게 심으면 배추와 무가 성장하는데 필요한 햇볕을 받는 시간이 부족해서 성장하는데 어려움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렇듯이 일상을 살아가면서 춘천 집 주변만 뱅뱅도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은  답답한 삶의 테투리에서 벗어나고

1박 2일 정도 여행을 다녀오고자 집을 나섰다.

여행 목적지는 강릉에 있는 '명주군왕 릉'이다.  

춘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여 2시간 내에 도착하는 곳이 강릉이다.

오랜만에 혼자 찾아가서 그런지 몰라도 새삼 강릉 시외버스터미널이 낯설음을 느낀다. 

10년 전, 20년 전에 강릉에서 직장을 다니 적이 있어서 강릉은 늘 낯설지는 않지만, 코비드 19 이후 왠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서 북적거리지 않은 조용한 시내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 춘천에서 강릉 가는 시외버스 안에는 옆에 젊은 아가씨가 탈 정도로 많은 인원이 탔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게 일상화된 세상이 완전히 바뀐 세상인 만큼, 옛날처럼 옆 사람과 대화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버스 안은 언제든지 무조건 조용한 모습이다.   

갑자기 '명주군왕 릉'을 가보고 싶었던 것은,

강원도 안에 있는 역사적인 인물 중에서 왕릉으로는 '명주군왕 릉'이 유일한 왕릉으로 알고 있다.

불현듯이 '명주군왕'을 찾아보고 싶었다.

강릉김씨의 시조인 '명주군왕릉'은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관리 산 285번지에 있다.

교통편으로는 시내버스를 타고 성산면사무 앞에서 내려서 강릉 마실버스로 갈아타고 가면 된다.

택시를 탈 경우, 시외버스정류장에서 17~20분 정도가 소요된다.   

지도 크게 보기

지도는 네이버나 다음.넷에서 검색하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명주군왕'은 강릉 김 씨의 시조이다.

명주군왕 휘(諱) 주원(周元)이다. 명주군왕은 신라 김씨 시조 대보공 알지(閼智)의 21세 손으로 신라 20대 태종 무열왕 휘 춘추(春秋)의 6세손으로 고조 문왕(文王) 증조 대충(代忠) 조부 사인(思仁) 부친 유정(惟正)이 3대에 걸쳐 신라 조정의 시중(현 국무총리)과 상대등을 역임하였으며, 무 월랑 유정은 화랑 출신으로 명주 사관 시절에 명주 토호인 연화부인(蓮花夫人) 박 씨와 신어(神魚)의 인영으로 혼인을 하여 장자 주원과 차자 내흥을 낳았다.

명주군왕 휘(諱) 주원(周元)은 신라 36대 혜공왕 때 시중을 거쳐 37대 선덕왕(宣德王) 때에 각간(角干) 시중(侍中 현 국무총리) 겸 12개 사단 정병 6만 명과 사병 3천 명을 관장하는 병부령(兵部令 현 국방장관)으로 선덕왕 재위 5년 (서기 785년)에 왕자가 없이 승하하니, 정의 태후(貞懿太后)의 교지(敎旨)를 받들어 군신 회의에서 상재인 주원을 왕위에 오르게 하였으나, 때마침 경주 북쪽 알천이 큰 비로 넘쳐서 입권을 하지 못하자 임금의 자리는 하늘의 뜻이라 하여 잠시도 비울 수 없다 하며 상대등(上大等) 심경신(金敬信)이 왕위에 오르니 이가 38대 원성왕(元聖王)이다.(삼국유사, 삼국사기 신라본기)

그 후 주원이 선덕왕의 국상에 임하여 입궁하니 원성왕이 주원께 왕위를 권하였으나, 사양을 하고 선대로부터 연고가 있고 모친 연화부인(蓮花夫人)의 고향인 당시 북빈경(北濱京 강릉)으로 이거 하니 원성왕 2년(서기 787년)에 주원을 명주군왕으로 책봉(冊封)하고 증조 대충(代忠) 조부 사인(思仁) 부친 유정(惟正)이 3대를 대명 주군 왕(大溟州郡王)으로 추봉(追封)하고 모친을 명주 연화부인(溟州(蓮花夫人)으로 호를 내리고 통일신라 九州五京 중 명주 9군 25현을 할양(割讓)하여 다스리게 하니 지금의 고성, 속초, 양양, 인제, 홍천 일부와 동해, 삼척, 울진, 태백, 영월, 평창, 정선, 단양, 청송 일원을 식읍(食邑)으로 자치적 국가체제로 溟州城長安)을 소경(小京)으로 고려 초기까지 누대로 세습 통치하면서 신라 김 씨(新羅金氏)의 수백 관향(貫鄕) 중에서 제일 먼저 강릉 김 씨(江陵金氏)를 본관(本貫)으로 명주군왕 기원 1225년 동안 명문거족의 발상(發祥)이 되었다.(동국여지승람)

명주군왕 릉은 관동지방의 유일한 왕릉으로 유형문화재 제12호로 매년 음력 4월 20일 능향대제를 봉행하며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처음으로 찾은 명주군왕 릉에 도착하여 주변 보면서 사진을 촬영하였다. 명주군왕 릉은 택시로 20여 분 소요될 정도로 강릉시내에서 먼 거리에 조금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찾는 사람이 거의 없고 입장료를 받는 수단도 없다.

지난날 강원도 관동(영동) 지역을  안에 다스렸다는 역사의 흔적을 느낄 수 있지만, 먼 옛날 큰의 천재지변으로 인해 조선의 왕이 되지 못하고 강원도 관동(영서) 지역을 다스리는 명주군왕이 된 것에 대해 조금은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명주군왕릉을 돌아보고 나오던 중 궁금한 점을 발견했다. 정문 앞에 명주군왕의 모친인 '연화부인'을 기리는 비각이 있는데 설명하는 안내 표지석이 없으며, 한자로 만들어진 비눈이 완벽하게 가려진 비각 안에 있어서 스마트폰을 안쪽으로 들이밀어서 사진을 촬영하였다.

내가 느끼는 것은 조선시대에 남존여비 사상의 영향으로 비각을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지금금을 살고 있는 후손들도 '연화부인'에 대해 여성이라서 소홀히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다음 기회에 '연화부인'에 대해 강릉김씨 대종회에 알아보면 수수께끼가 풀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왕릉 입구를 들어서자 고추를 말리는 농부 부부의 모습만 보일뿐 사람이 거의 없다. 가을철이라 왕릉 입구부터 왕릉에 이르는 데까지 풀 깎기 작업을 해놓은 고요한 보습을 볼 수 있었다.

명주군왕 릉 경내를 돌아보고 저녁 마실버스를 타고 성산면사무소 앞 정류장에 내려서 시내로 들어오는 버스를 갈아타고 시내로 들어왔다.

숙박업소가 대체적으로 많은 평소에 자주 갔던 교동택지를 찾았다.

어떤 호텔 카운터에는 내나이 또래의 아주머니  앉아 있었다. 이상하게도 만나자 마자 사장님하고 많은 대화를 시작했다. 사장님한테 요즘 강릉을 찾아오는 관광객이 많느냐고 물어보았다. 요즘 강릉을 찾는 관광객이 많다고 한다.

코비드 19가 기승을 부려서 그런지 서울과 경기도 등 수도권에서 관광객이 많이 찾는 것 같았다.

강릉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서울과 경기도라는 도시를 벗어나서 답답함을 달래고 좋은 공기를 마시러 강원도를 많이 찾는 것 같다.

사장님과 많은 얘기를 나누다 보니 약 30분이 지났다.

사장님은 춘천이 고향이라고 한다. 고향까마귀라는 말이 있듯이 고향인 사장님을 만나서 그런지 몰라도 만난지 오래된 사람처럼 새삼스럽게 반가웠다 

사장님은 과거 경포대 쪽에서 숙박업을 했으며, 강릉에 시집온 지 40년이 된 부자 사장님이었다.

대화를 마치고 혼자서 저녁을 먹고 호텔 숙소로 들어갔다.

남자든 여자든 강릉에 아는 여러 사람이 있지만, 시기가 시기인 만큼 굳이 전화해서 불러내지는 않았다.

춘천으로 오기 위해 강릉 시외버스터미널 건어물집에 들러서 가자미식해 1통을 샀다.  

여행을 쉽게 할 수 없는 요즘이지만, 마스크 철저히 쓰고 나름대로의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아무튼 오랫만에 찾아간 1박 2일의 짧은 강릉 여행이었지만, 춘천에서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느낌으로 신선하고 좋았다.